무념무상 Freedom from all Ideas and Thoughts
Digital print 87 * 130cm 1999, 1998, 1996, 2000
이 완 교 LEE Wan Gyo
동양과 서양 미학의 다른 점은 서양은 눈으로 즐기지만 동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질기는 심제와 좌망의 즐거움이다. 공간적으로 보면 서구의 빈 공간은 실체적인 허로서 허전할 뿐이지만 동양의 아물아물한 빈 공간은 좌망으로서의 선적인 경지와 소요유를 맛볼 수 있다.
이러한 허의 공간은 심오하고, 멀고, 높고, 자유롭고, 한적하고, 담백하고, 우아하고, 맑고, 깨끗하며 진실이 살고 있는 본원의 도가적 공간으로 발ㄲ은 말랐어도 안은 기름지고, 밖은 죽은 듯하지만 안은 살아있으며, 밖은 나약한 듯하지만 안은 위대함을 품고 있다.
이렇게 아스라한 공간 앞에 서면 마음이 비워지고 고요함의 정적에서 대천명에 이르게 되고 만물이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이러한 공간은 심제와 좌망으로서 육신과 눈, 귀의 작용이 마비되어 버리고 형체마저 잊어버린 채 오로지 대 자연의 이치와 오묘함에 다다르게 되고 온 우주를 볼 수 있게 된다.
가까이 오비는 사물은 보는 순간 큰 감동을 주고, 그 순간적 감동이 시간에 따라 원상으로 되돌아가지만, 멀리 아스라함의 감동은 뼛속 깊이 스며들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깨달음으로 남는다.
또한 동양적 색상인 검은 색으로 구체적인 형상을 떠나 심오한 느낌인 심연의 본질과 현묘함을 얻게 된다. 그래서 동양에서의 검은 색은 모든 색상의 근원으로 동양 철학과 연된되어 있다.
검은 색의 농도를 엷게 하는 것은 어떤 형상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반대로 형상 밖에 있는 것을 얻기 위한 것이다. 검고 어두운 색은 부분을 보기보다는 총체적으로 보아야 하고, 한참 동안 그 속에 빠져 들어가야만 그 참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