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i Wan Gyo
 



제16호 2010 강남문학 <저 검정 너머의 세상에는>

- 수필가 이은순





인사동에서 열리는 이완교 사진전에 다녀왔다.
수차례 이 작가의 전시회에 다녀왔지만 오늘은 현수막에 흩날리는 '니르바나'
(불교 용어로 해탈의 경지) 제목 앞에 머문 눈길은 생각도 멈춰 냉큼 발길이 옮겨지지가
않았다. 전시실 안은 흑백의 잔치였다고나 할까.
펼쳐진 작품들은 마치 동양화의 수묵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양 나에게 낮 설지 않음은 한때 수묵화에 빠져 그림을 그렸던 옛 영상이 내게로 다가옴인가. 먹과 붓으로 화선지에 찍고 나면 퍼지는 발묵, 스미고 스며들어 예기치 않은 다른 빛으로 향해가는 오묘한 연출을 살짝 맛본 터라 어느 작품 하나도 슬쩍슬쩍 넘기지 않았다.
작가는 현실을 몽롱한 불확실의 세계로 보고 안개 너머에 있는 피안에의 동경을 끝없이 추구하고 있다. 눈앞의 나무나, 풀, 꽃들이 하나의 하찮은 물상일 뿐 그것들이 갖는 미학적 형태나 색, 향 등은 자가에게는 별다른 의미로 각인되지 못한다. 오로지 그 원형만이 보일 뿐이다.
그래서 모두 같은 톤의 색으로 흑색과 회색의 조화로 희미한 형상만이 존재한다.
온통 대지는 회색으로 물들고 연무가 드리운 오솔길을 끝없이 따라 가노라면 검정 그 너머에는 우리가 가고픈 그리움의 세계가 번뜩이며 진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속념을 떠나 이상세계의 희원을 자아내게 하는 건 아닌지.

작가는 바로 현실이란 혼돈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몸서리치는 고독을 씹으며 인간이 꿈을 버리지 못하는 노스탈자와도 같은,
온 사람의 마음을 저리도록 아프게 하는 느낌을 준다.
우리가 노래하고 춤추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 또한 고독을 견뎌 보려는 정신적인 유희라 생각 한다면 그의 작품 역시도 고뇌의 씨앗으로 봄직도 하다.

온통 검은색을 바탕으로 톤의 강약에 따라 현묘한 공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상상을 자유자재로 표현하였다. 이는 바로 동양화의 발묵법을 터득한 것으로 언어 이전의 사유세계를 나타내는데 더 없이 좋은 기법이다. 이 같은 오묘함을 사진에 접목시킨 것은 작가만이 집요한 추구 끝에 발견한 착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화폭 속에는 시공을 넘나들며 모아놓은 자연의 물상들, 작가는 일일이 따지지 않는다. 추억과 그리움, 회한과 자책, 절망과 희망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 됨으로 끝자락에는 언제나 희망이 한 가닥 밝음으로 인도한다. 이것은 구도에서나 빛으로 때로는 무형의 마음으로 처리된 작가의 의도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마법이 스며 있는 듯하다.

그 화폭에 나타난 형상들은 불가에서 일컫는 곧 색즉시공(色卽是空-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현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 현상 하나하나가 실체가 있는 것)이요.
공증시색(空卽是色-색이란 모든 형체가 있는 만물을 뜻함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만물은 모두 일시적인 모습 일뿐 실체의 것이 아닌 텅빈 公)의 묘법을 보여준다. 우리가 눈감고 중정(中正)에 이르러 주변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바로 이런 공(空)의 사상에 어긋나지 않는다.
작가는 본디 지니고 있는 소심(素心)의 세계를 사진의 화면으로 옮기는데 성공한 것이다.

작가는 역시 동양정신을 바탕으로 작품에 임했다고나 할까. 사진이라는 것이 출발자체가 과학이다. 근래의 학문과 예술이 동서양의 접목으로 크게 발전하고 있는 것 같이 작가 역시 서양의 과학에다 동양정신을 심어서 유감없이 표출한 것은 수많은 실패와 시련 후에 얻은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작품에 깔린 소재가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것을 택하여 서양화 기법에 동양화의 수묵화를 가미한 오묘한 깊이를 발굴했다고나 할까.
혼은 아득한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세계로 돌아 왔다. 순간의 셔터는 그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황홀한 세계로 이끌어준다. 강과 내가 있을 때는 물길을 나타내고, 중첩된 산속에서도, 빽빽한 숲속에서는 한 줄기의 빛이 비치고, 험준한 산속에서도 한 채의 인가가 있고, 드넓은 바다에도 물길을 그려 넣은 것은 닫혀 있는 마음의 탈출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작가는 현실을 꿈의 공간으로 바꾸고 그 너머에는 이상적 현실을 설정하여 전체 화면을 꿈같은 몽환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 검정 너머에는 다른 세계로 가는 듯, 이승과 저승이 교차하는 길목에서 새롭게 번뜩이는 오색찬란한 빛으로 바라본 나의 시선은 마음 속 까지 아름다운 해오름으로 다가온다.
자꾸만 보아도 또 보고 싶은 작품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현실 앞에 부딪치는 뭇 상념에서 벗어나 저 너머 검정 너머 니르바나의 세계에서는 참 자유가 가득할 것 같기 때문이다.